재즈를 처음 듣기 시작하고 한동안 한국 재즈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몇몇 연주자들의 음반과 라이브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당시 내 인상은 미숙함, 어정쩡함 같은 것들이었다. 오리지널만큼 높은 레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창적인 개성도 아닌 것이 어색하게 섞인 혼종을 듣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고, 어느 정도는 내 무지와 편견이었을 게다.
뒤늦게 나는 한국 재즈에 더 다가가고자 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입체적으로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재즈 음악가들과 그들을 둘러싼 외적 굴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을 탐구해 보고 싶다.
먼저 작품을 듣고, 음악가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제도를 살피고, 청취자들이 재즈에 갖는 태도에 대해서도 보다 상세하게 접근할 것이다.
굳이 생태계라는 용어를 가져왔듯이, 단편적 정보를 통합해 살아 움직이는 ‘한국 재즈 세계’를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다.
확실히 한국 재즈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재즈 음반은 팔리지 않고, 공연은 사람을 채우기 어렵다. 그나마 대형 페스티벌 업계는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듯하다.
젊은 음악가들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무관심과 무지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암울한 분야는 재즈 저널리즘으로 보인다. 형식과 내용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날카로운 비평으로 음악가들의 창작력과 청취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순환 구조에 일조하지 못한다.
이 배경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은 이렇다.
- 한국에서 재즈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아티스트의 음반이나 공연과 이어질 수 있는 고리와 루트가 많고 탄탄한가.
- 대형 페스티벌이 성공하고, 그 관람객이 계속 늘어난다고 하지만 일상에서 재즈를 접하는 사람은 과연 늘었는가.
- 한국 재즈 아티스트들의 삶은 나아지고 있나.
거대한 사회와 제도의 틀 안에서, 이 문제들이 유독 재즈만이 겪는 특이 사항은 아닐 테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예술 장르와의 비교도 필요하고,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
제대로 하려면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탐구하고 논의해보려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아,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사실 생태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당면한 문제이겠지만, 공론장 자체가 없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며 글을 쓰고 보니, 사실 무엇보다 먼저 ‘본토’인 미국 재즈 생태계부터 좀 더 자세히 탐구하고 나서 한국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싶다. 선후가 뒤바뀌었지만 우선 역량이 되는대로 동시에 이야기를 진행해 볼 것이다.